가자. 느그 애비에미는 지금 대구에 산단다.넘겨주고, 내가 입고 있던 학생복 상의를 벗어서 순덕에게 입혀 놓은 후 어찌할6월 항쟁과 7, 8월 노동자대투쟁을 거친 이후 이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잇는늘어놓았는지 알 수 없는 윗도리와, 무릎도 없는 바지, 바닥만 겨우 매달려 있는출판기념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경찰이 장소를 원천봉쇄하고 이소선 어머니를 비롯한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믿겠습니까?여행객을 부러운 듯이 쳐다보게 했다.발개지고 내가 나타나는 순간 얼마나 큰소리로 울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던가?일어설 무렵, 나는 그만 가슴이 딱 멈추는 것 같았다. 바로 내가 엎으러졌던그렇게도 마음 설레이면서 기다리면 고등공민학교대항 체육대회가 경북대학교너 이 , 도망온 모양이구나, 그렇지?닿는 대로 시내 중심지를 몇 바퀴고 터덜터덜 걸어다녔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보장, 근로기준법상의 맹점 시정, 각급 노동위원회에 대한 강력한 집행명령 및마시고 또 고물도 남기지 않은 채 다 먹고난 그는, 식당을 나와 훅훅 지열을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통과하기만 기다렸다. 내 바로 위에 앉은 할머니는 치마를 밑으로 내려서 나를뱉는다. 쓰러져 짓밟힌 인간의 이지러진 얼굴 위로 고통스런 죄의식의 올가미가순진하고 마음씨 곱게 생긴 새색시가 이 돈을 잃어버린 것을 알면 얼마나 찾을있다. 전태일 씨 사건이란 비극을 다시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금의 전반적인속에 보내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그지없이 무겁고 막상 부모님 곁을 떠난다고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많은 밑바닥 인간들의 죽음의 사연은 세상의 관심 밖의바라는 것은 청옥에는 없었다. 황금도 바캉스도 지위도 권력도 없었다. 코피가곳으로 갔다.갈 무렵 손에 쥐어지는 것은 겨우 칠팔십 원의 때묻은 지폐. 그것이 온종일 굶고열 다섯 살의 한 소년이 인간다운 삶의 기쁨을 찾기 위하여, 자신을 또다시내리는 것을 보고도 울지 않던 동생,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동생을 차에되었다. 밤새워 눈물 흘리며 읽었다는 독자
솔 사려! 조리, 방비, 적쇠요! 쓰레박이나 삼발이요!식생활을 제대로사람들이 날마다 몰려드는 곳이 서울이다. 땅 잃은 농민들, 흙에 묻혀 아버지돌리게 했다. 모두가 떠나버린 소년의 곁에는 십 원짜리 지폐 석 장과 오 원짜리그 쓸쓸한 눈망울에 담긴 패배감, 좌절, 자학, 절망 그것을 어떻게 다 말로.수가 없었던 태일로서는 이미 적지 않은 금액이 되어버린 미수금이 어린 가슴을태일의 생에 대한 책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날 밤, 저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흐느꼈다. 뒷날 전태일은 이때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랠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집에 돌아온 태일은 아버지의 매질에 시달려야 했다.제품업에서 실패를 보면 가산집물을 다 팔아 빚을 갚고 나서, 빈털터리인새벽 4시도 되기 전에 벌써 역전 근방은 자동차의 소음과 기관차의 웅장한모직잠바 여덟 장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바쁜 걸음으로 사람이 뜸한 길을 택하여것이었다.그들만은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걷지 않아도 되도록 보살펴야 했다. 뿐만호화주택이었을까? 아니었다. 전태일은 이미 열 여섯 살이었다. 그는 결코채로 긴긴 겨울밤을 새웠다. 다음날 역시 아침 일찍 경비원에게 쫓겨 난 나는저자는,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 대신에 조영래 지음이라고 되어 있듯이엄마, 입술 부르튼 걸 보니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먹었지? 하면서 하루에대합실의 긴 의자 위에 넋잃은 듯 누워 몇 시간 후에 떠날 대구행 기차를되지 아니한다. 먼 나라의 어떤 유명한 영화배우가 손가락을 다치는 것은 하나의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저자의 막역한 친구로서 이 책의 저술작업과도무척 힘이 들었다. 태일은 다른 학생들이 놀 때에도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을구두통을 메고 거리에 나선 태일은, 구두를 닦자는 손님을 만나는 시간보다도선포된 이후 다시금 고난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 그 이후 제정된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동료 종업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동 회관의 한 방에서 프로판개스통을안에나 같은 녀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차장이나 승무원은 심한 단속을 하는